
말 너머에 있는 것들
당신의 말 너머에- 말을 언어로만 듣지 않고 그 사람의 경험과 인생으로 들을 때, 우리는 문법적인 문장 너머의 의미를 만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사는 방식과 타인이 사는 방식을 잘 분리해야 미워할 일도, 원망할 일도 줄어듭니다. 우리는 진행형입니다. 잎이 다 떨어지고 초라한 가지만 남은 나무를 보며 그동안 뭐 했냐고 탓하지는 않을 겁니다. 자신만의 봄, 여름, 가을을 살아낸 생명이란 것을 알기에 그렇습니다. 당신 앞에 선 그 사람도 지금이 전부인 것처럼 대하지 말아 주세요. 성장이 끝난 나무처럼, 완성된 그림처럼 평가하지 말아 주세요. 그도 인생의 긴 단계에서 몇 걸음을 걸었을 뿐입니다. 지금은 봄을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근사해질지 당신도, 저도 알 수 없습니다. 사람을 시간에 가두고 '겨우 그거냐' 혼내지 말아 주세요. 우리는 모두 완료형이 아니라 진행형입니다.
나는 그럴 수 있지만 너는 아닐 수 있다는 것, 내게 깜찍한 일도 네게는 끔찍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을 애써 기억하며 말하는 것이 슬기로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안 돼요"를 주고받는 일은 반갑지 않습니다. 특히 거절에 대한 민감성이 높은 사람들은 사건에 대한 거절도, 사람에 대한 거절도 받아들이거든요. "미안해. 네가 서운해할까 봐 나도 거절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지금은 어렵겠어." 깨끗하고 직접적인 말, 그것이 소통을 만드는 가장 좋은 재료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말에 화를 낸다고 뭐라 하지 마세요. 이 세상에 '아무것도 아닌 것'은 없습니다. 고의가 아니었다고 변명하기 전에 얼마나 다쳤는지 살피는 일이 먼저입니다. 관계에서 뺑소니만큼은 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아무리 세상이 바빠져도 마음을 얻으려면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말은 포장지가 아닙니다. 말은 이해력과 공감력, 분별력과 표현력의 조합입니다.
명태의 이름은 참으로 많습니다. 자연 그대로의 살아 있는 생태, 꽁꽁 얼린 동태, 오랜 시간 얼렸다 녹였다 말린 황태, 완전히 말린 북어, 반만 건조한 코다리, 어린 노가리, 하얗게 말린 백태, 까맣게 말린 먹태. 생선도 어떤 과정을 거쳤는가에 따라 이렇게 다른데 사람이야 오죽할까요. 당신이 살아온 방식이 아니라고 뭐라 할 수 있을까요. 맞고 틀림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세요. 그에게도 그만의 방식과 이름이 있습니다. 편한 것이 늘 좋은 것은 아닙니다. 낯선 불편함이 관계의 새 길을 만들어냅니다. 우리는 공통점 때문에 친해지지만 차이점 때문에 성장하기도 합니다.
말하기 전에 알아야 할 것들
내가 말 안 하려고 했는데 하는 말은 하지 마세요. 그렇게 시작된 말은 100퍼센트 도움 되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말하거나, 사람'들과' 말하는 사람 한 끗 차이입니다. 무엇을 지키고 싶어 하는지 무엇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는지 볼 수 있어야 까슬까슬한 껍질 안 보드랍고 여린 마음을 만날 수 있습니다. 당신이 먹은 음식이 무엇인지 입 냄새가 알려주고, 당신이 먹은 마음이 무엇인지는 말 냄새가 알려줍니다.
경청은 듣는 것만이 다가 아닙니다. 상대의 말 속도에 따라서 안정되게 끄덕끄덕. 내용의 흐름에 따라서 부드럽게 "음, 음." 파도치는 감정선을 따라서 자연스러운 표정과 몸짓 리듬의 연출, 길고 지루한 문장의 전후를 파악하는 이해력, 진짜 감정과 가짜 감정을 구분하는 분석력, 숨겨져 있는 진심을 찾아내는 추리력. 한 번에 이 많은 걸 다 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략적으로 듣고 모른다고 생각하세요. 상대가 말해야 하는 것, 또 내가 들어야 하는 것을 정확하게 안내해 주어서 서로 너무 먼 길을 돌아가지 않으면서도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게 전략적으로 경청하는 게 배려입니다. 잘 모른다고 생각해야 노력이라도 하게 됩니다. 백 번을 말해도 안 되는 것은 말로는 안 되는 것 아닐까요?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너무 말에만 의지해서 바꾸려 들지는 마세요.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도 괜찮습니다. 어떻게 말할지 모르겠노라고 고백하면 됩니다. 대신 말한 대로 행동하고 행동한 대로 말하세요. 헷갈리지 않게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담으려면 마음에 공간이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 이야기에 본능적으로 반응하지 않으려면 시선에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는 말, 타인에게 하는 것 같지만 결국 자신을 향한 언어입니다.
누구에게나 위로가 필요합니다. 다만 말하는 사람과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지요. "나 좀 위로해 줘."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자신을 진짜 아낄 줄 아는 사람입니다. 상처받고 싶지 않아 거리 두는 연습을 하며 자란 사람들은 감정을 만나기보다 피하는 데 익숙합니다. 차단하면 차단할수록 자신을 지킬 수 있다고 믿어온 사람들은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속이는 데 익숙합니다. 그런데 피하고 속일수록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의혹이 늘어갈 겁니다. 나답게 산다는 것, 나로서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서 혼란스러워집니다. 당신이 누구인지 알아가고 싶다면 감정의 길을 먼저 따라가세요. 당신이 조작하고 관리했던 감정부터 숨통을 틔워주세요. 당신이 어릴 적 위험하다고 생각했던 그 일은 이제 더는 벌어지지 않습니다. 안심하세요, 이제 괜찮으니까요.
말해야 할 것과 말하지 않아야 할 것을 분별하는 것, 말이 필요할 때와 들을 때를 구분하는 것, 말을 하기 전에 상대의 준비 상태를 살피는 것, 말하지 않는 숨은 감정과 진실을 찾는 것, 말이 가진 개인적인 의미와 해석을 존중하는 것.
책 <슬기로운 언어생활> 저자 김윤나
한두 페이지의 짧은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어렴풋이 알고 있던 내용들이지만 실천하고 있지 못하는 것들, 맞아 맞아하면서 읽게 되고 내 이야기구나 하면서 읽게 되는 내용들, 하지 말아야지 하는 말들은 역시 하지 말아야 하고 마음은 타인을 위해서도 그렇지만 나를 위해서도 피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나에 대해 무뎌진다는 것, 그게 슬기로운 거인 줄 알았는데 정작 나를 잃어가는 것이었던 거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 저자
- 김윤나
- 출판
- 카시오페아
- 출판일
- 2018.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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